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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COLUMN

하나와 하나가 만나
하나가 되는 비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길

문용필 목사님 성경 칼럼2026년 10월 18일 · 대한예수교장로회 은혜교회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어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런데 지금 지구상에서 하나로 살아가고 있는 부부가 얼마나 되겠는가? 하나도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하나가 되어 있는 부부를 찾기가 너무 어렵다. 못 보고 못 만났다 보니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로 희귀하다. 남들 앞에서는 사이좋은 것처럼 보이나 단둘이 있을 때는 꾸밀 필요가 없고 연기할 필요가 없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본모습을 나타낼 때는 서로 따로가 된 지 오래되었음을 보여 준다.

각방을 쓰고 따로 지내고, 계산상 둘이 수입을 합치면 더 유익이 되고 서로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는 합치고 합하나 마음은 이미 따로가 된 채, 이혼만 안 했지 이혼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서로 남이 되어 살아가는 부부가 소리 없이 조용히 늘어나고 있다. 이미 사실상 실제는 이혼한 사이이나 자녀 결혼을 생각하고 본인들의 대외적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서로 이제 관심 끄고 간섭하지 않는 사이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지금 많은 부부들의 모습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결혼해서 서로 함께 살아가며 서로서로 의견 충돌이나 갈등이 될 때, 실수하거나 잘못했을 때, 서로 실망하고 서로 마음 상하고 서로 속상할 때, 그때가 부부가 하나가 되는 것을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때이다. 이때 서로 변명하고 합리화하고 서로 잘잘못을 따지고 들면 문제는 더 커지고 더 나빠진다. 그러면 서로서로 좋았던 것, 기뻤던 것, 행복했던 것, 감사했던 것은 없었던 것처럼 기억이 안 나고, 서로 실망되고 속상하고 밉던 기억만 기어 올라와 서로가 서로를 부정적으로, 나쁜 쪽으로만 보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생각이나 우리 감정이나 우리 기분으로, 마음 가는 대로, 기분대로 툭툭 말하고 행동하면 반드시 후회한다. 마음을 제어해야 한다. 감정이 상할 때일수록 몸을 쳐서 굴복시켜 감정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이것을 모르는가? 알면서도 왜 우리는 화가 나거나 감정이 상하면 이런 후회할 일을 충동적으로 해 버리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하나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겟세마네-기름 짜다) 자신을 부인하시는 기도를 하셨다. 자신을 기름 짜는 기계 속에 넣고 기름을 짜듯 자기 부인하시는 기도를 하시며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실 때 말씀하셨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눅 22:40). 유혹에 왜 빠지는가? 절제하지 못해서 빠진다.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 7:5).

왜 절제하지 못하는가? 자기 몸을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제어해야 할 자기 몸을 제어하지 못하는가? 롬 8:13,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영으로써 몸의 행실, 곧 자기 몸의 행실의 주체인 몸을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이 바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고전 9:27)이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온 힘을 다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기 부인의 기도를 하시며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눅 22:44)라고 하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기를 기름 짜듯이 자기 부인의 기도를 하셨던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고, 죄로 갈라질 대로 갈라져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진 우리 모든 인류, 서로 갈라졌고 하나님과 갈라졌고 온 우주 만물과 갈라질 대로 갈라져 탐욕의 오염으로 지구라는 큰 땅덩어리를 병들게 하고 오염시켜 모든 피조물이 신음하게 한 악한 인류, 감사할 줄도 모르는 죄와 허물로 영이 죽은 인류,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망하게 하는 귀신과 귀신 내린 무당, 점쟁이만 찾는 전 인류를 위해 저주받으시고 저주 속에 죽으셨다(롬 3:9–12, 갈 3:13). 지옥에까지 내려가셨다(벧전 3:19). 그리고 지옥에서 부활하셔서 나오시고 승천하셔서 우리의 천국 길이 되셨다(히 13:20).

그리고 우리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사셔서, 곧 우리의 속죄 값을 죽으시면서 생명으로 지불하시고 우리 교회를 자기 아내로 삼으시고 자기 피로 사셔서 하나님께 드리셨다. 생명의 값을 지불하시고 사신 교회, 곧 자기 아내와 결혼하시려 다시 오신다(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계 19:7–9, 1:7).

어떻게 서로 다르고 너무 다른 부부가 서로 달라서 따로 각각 사는 게 당연한데, 당연하지 않게 서로 하나 되어 하나로 살 수 있는가?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 5:25).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엡 5:28).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엡 5:24).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교회의 남편이시요, 우리는 이제 우리 몸의 주인이 아니요 우리 몸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우리 몸에 성령님이 거하시므로 우리 몸은 성령의 전인 것을 믿고, 자기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는 삶을 살 때 부부간에 서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가 된다. 그리스도를 통해 몸과 영이 성령으로 하나 되어 자기 마음대로, 자기 멋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감정대로 살려는 것을 죽이고 제어하니 부부간에 진정으로 하나가 된다(고전 6:17, 19–20).

문용필 목사님 성경 칼럼 · 2026년 10월 18일